・『ひとり暮らし』谷川俊太郎エッセイ (『혼자살기』다니가와 슌타로 수필)より ー抜粋

 

楠瀬ひろこ(쿠스노세 히로코) 역

산다는 것과 생활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었던 게 나의 청춘이었다. 그런 관념을 가졌던 것이 다행이었는지 불행이었는지. 지금은 생활과 분리된 삶이란 상상조차 못하지만, 사람들이 시를 통해 원하는 것이 있다면 혹시나 그런 분리되는 순간이 아닐까 한다. 생활을 성립시키거나 혹은 속박하는 여러 사실만이 현실이 아니다. 그 저변에는 생생한 삶의 현실이 숨어 있다. 생활의 옷을 벗겨내고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삶과 마주 하는 것은 두렵지만 감미롭기도 하다. 하지만 진정한 삶의 모습은 그런 의식의 개재를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  ”살아 있어 행복하다” 는 통속적인 감탄의 표현이 어쩐지 어색하고 부끄럽게 들리는 건 삶의 실감은 그런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하거나 얄팍한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진정한 삶의 모습은 더 과묵하며 섬뜩하기조차 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작품중에 “삶” 이란 작품이 있는데 그게 예상외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여기서 나는 삶의 느낌을 지금 한순간에서만 찾으려 하고, 과거와 미래는 거의 무시했다. 즉 인간에게는 역사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한순간이라고 할 만한 시간이 있는데, 시는 기본적으로 그런 순간, 즉 시간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일순간에 속하는 형식이 아닐까. 그것은 일상적인 눈으로 보면 비현실적인 순간이지만 그런 순간에야 말로 위안을 받으면서 인간은 길고 긴 일생을 살아 가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지금 나는 살고 있다” 라고 하는 아무런 주장도 들어 있지 않은 이 한 마디가 뭔가 단언하듯 힘차게 들리는 것은 오히려 역사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시시각각 지나가 버리는 “지금”을 의식한다는 것 자체가  역사를 의식하는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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