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郷忘じがたく候』第五章より 司馬遼太郎 (『잊을 수 없는 고향이여』시바 료타로) ー抜粋

『잊을 수 없는 고향이여』제5장(抜粋)  시바 료타로

 

伊藤弘一(이토 고이치) 역

심수관 씨는 재작년 11월 그의 반생에 있어 가장 긴 여행을 했다. 서울대, 부산대, 고려대 등 세 대학교의 미술, 미술사관계 연구자들의 초대를 받고 한국에 간 것이었다.

서울의 호텔에 체재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박 대통령을 한번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일본대표부에 신청했더니 참사관이 나와서 절대로 무리라고 하며 가령 일본 천황폐하가 외국에서 온 일개 여행자를 일일이 알현하시겠느냐고 했다. 그럼 그렇겠지. 그러나 신청서류만은 제출해 놓았다.

그날은 일정 대로 서울대학교 대강당에서 강연을 했다. 심 씨의 성명을  사회자는 심수관 선생님이라고 한국말로 소개를 했다. 그러나 370여 년 전에 한국사람이기를 그만 둬야 했던 심수관 씨는 사쓰마의 무사가정에서 쓰는 품격있는 사쓰마 사투리나 사쓰마 사투리가 섞인 표준적인 일본어로밖에 할 수 없었다. 강연은 당연히 통역을 통해서 했다.

심 씨는 강연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를해도 좋을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라고 서두를 꺼내고 “나는 한국의 학생들에게 희망하는 것이 있다. 한국에 와서 많은 젊은이하고 만났지만 그들 모두가 36년 동안의 일본 압정에 관해 말을 했다. 물론 당연한 것이고 말 그대로이긴 하지만 그 일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말을 한다는 것은 젊은 한국을 위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으나 정도가 지나치게 되면 과거지향적인 심정을 갖게 된다. 새 국가는 앞으로만 전진해야 하는데 그런 심정을 가진다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 일이겠는가? ” 고 물었다.

이 같은 말을 다른 일본 사람한테 들었다면 청중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강당에 가득 모인 학생들은 단상 위의 심수관 씨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원래 사츠마 출신의 사람처럼 매우 감정이 풍부한 심수관 씨는 가끔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럴 때면 창피한 듯 바로 쾌활한 농담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대들이 36년에 대해 말한다면”

“나는 370년에 대해 말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끝맺었을 때 청중들로부터 박수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심 씨가 한 이야기에 자신들도 동감이라는 것을 연단 위의 심 씨에게 알려 주려는 듯 노랫소리가 울려 나왔다. 그 노래는 한국에서 전국적으로 애창되는 청년가이며 심 씨도 한국에 와서 몇 번이나 들은 적이 있어 알고 있는 노래였다. 가사는 “본 적이 없는 사나이지만 노란 셔츠를 입은 사나이”라는 내용의 노래로 학생들은 심 씨에 대한 우정의 마음을 이 가사에 실어 보내고자 했던 것이었다.

노래는 강당 전체에 울려퍼졌다. 심 씨는 단상에서 그저 어리둥절했다. 눈물이 안경을 적셨다. 그러나 떠맡아야 할 전통이 너무 많은 심수관 씨는 이럴 때야말로 사츠마인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여기서 서둘러, 눈물을 농담으로 바꿔야 했다. 가고시마의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사쓰마인다운 사쓰마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던 심 씨였던 만큼 밝게 농담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러나 큰 합창의 파도에 철썩철썩 눌려서 축축해진 불꽃처럼 그 또한 축축해졌다. 심 씨는 큰 합창이 끝날 때까지 단상에서 몸을 떨면서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그 후 심 씨는 호텔에 돌아왔다. 프론트에 일본 대표부에서 전갈이 와 있었다. 곧바로 전화를 했더니 청화대 비서실장과 만나기로 돼 있으니 청와대로 가 보라고 써 있었다. 그렇게 했다. 관저 문을 들어서니 정원에 풀어놓고 기르는 조선 꿩들이 보였다. 그 뒤에 이런저런 일을 거쳐 박 대통령이 직접 만나 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일본인으로서 단독회견이 허가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비서실장의 안내를 받으며 긴 복도를 걸어갔다. 접견한 장소는 대통령의 서재이었다. 이런 개인적인 방이 사용되는 것도 아마 예외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그 후

—좋은 형님과도 같았다.

라고 심 씨가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만큼 박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입장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허물없는 태도로 이 나그네를 응접해 주었다. 대화 도중에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잠시 후 몇 장의 지도를 가져 와 탁자 위에 놓고 펼쳐 보였다. 심 씨가 내려다 보니 다름 아닌 남원성의 지도이었다.

“당신의 선조가 잡혀간 곳이 바로 이 곳이죠”

대통령은 심 씨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서 환대의 뜻을 표하려던 것이었다. 마치 육군대학교에서 전술강의라도 하듯 정밀하게 양군의 병력, 배치를 설명하고 날짜를 확인하며 격심했던 남원성에서의 공방전에 이르기까지 그 당시의 이야기를 펼쳐 나갔다.

— 도부로쿠를 좋아하시오?

라고 물으셨다. 도부로쿠를 좋아합니다. 도부로쿠도 저를 좋아합니다. 라고 사쓰마 사투리로 대답했더니 박 대통령은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이 많이 마시면 배탈 날 것이니 조심하라고 말해 주었다. 형을 가져본 적이 없었지만 형처럼 느껴진다는 생각이 든 것은 헤어져서 자동차가 막 출발하려고 했을 때였다. 허나 만찬 때 기분 좋게 취해 갑자기 노래 부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자기도 모르게 여느 때와는 달리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그게 그만 관저의 정적을 깬 것이 아닌가 조금 후회도 됐다. 노래는 군가 “보리와 군대”였다.

 

(原文)

司馬遼太郎 『故郷忘じがたく候』 第五章より

 

沈寿官氏は、一昨年十一月、氏の半生のなかではもっとも長い旅をした。ソウル、釜山、高麗の三大学の美術、美術史関係の研究者に招かれて渡韓した。

ソウルのホテルに滞在していたとき、にわかに朴大統領に会いたくなり、その旨、日本の代表部に頼むと、参事官が出てきてとても無理です、例えば日本の天皇陛下が外国からの旅行者にいちいち謁見されますか、といわれた。なるほどそのとおりであった。しかし書類だけは提出しておいた。

この日、日程によってソウル大学の大講堂で講演をした。沈氏の姓名は紹介者から沈寿官先生と韓音をもって紹介されたが、しかし三百七十余年以前に韓人であることを終わっている沈寿官氏は、薩摩の士族家庭で話される品のいい薩摩弁か、薩音のまじった標準日本語以外には話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講演は当然ながら通訳を通しておこなわれた。沈氏は講演の末尾に、

「これはもうしあげていいかどうか」

と、前置きして、私には韓国の学生諸君への希望がある、韓国にきてさまざまの若い

人に会ったが、若い人のたれもが口をそろえて三十六年間の日本の圧政について語った。もっともであり、そのとおりではあるが、それを言いすぎることは若い韓国にとってどうであろう。言うことはよくても言いすぎるとなると、そのときの心情はすでに後ろむきである。あたらしい国家は前へ前へと進ま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のに、この心情はどうであろう。

そのように言った。このおなじ言葉が、他の日本人によって語られるとすれば、聴衆はだまっていないかもしれなかった。しかし大講堂いっぱいの学生たちは、演壇の上のシム・スーガン氏が何者であるかをすでに知っていた。本来、薩摩人らしく感情の豊かすぎる沈寿官氏はときどき涙のために絶句した。絶句すると、それに照れてすぐ陽気な冗談をいった。最後に、

「あなた方が三十六年をいうなら」といった。

「私は三百七十年をいわなければならない」

そう結んだとき、聴衆は拍手をしなかった。しかしながら沈氏のいう言葉は、自分たちの本意に一致しているという合図を演壇上の沈氏におくるために歌声を湧きあがらせた。歌は韓国の全土で愛唱されている青年歌で、その曲は沈氏もソウルにきてから何度か耳にして知っていた。歌詞は「見知らない男だが黄色いシャツを着た男」といったふうのもので、学生たちは沈氏へ贈る友情の気持をこの歌詞に託したのであろう。歌は満堂をゆるがせた。沈氏は壇上でぼう然となった。涙が、眼鏡を濡らした。しかし背負うべき伝統の多すぎる沈寿官氏は、ここで薩摩人らしくふるまおうという気持が反射的におこった。涙を、ここで大いそぎで冗談に変えてしまわなければならない。沈氏は鹿児島の友人たちのあいだでは、もっとも薩摩人らしい薩摩人は沈寿官であるといわれていた。沈氏は陽気な冗談を飛ばそうとした。しかし、大合唱の潮にひたひたと圧されて、花火玉が湿るようにそれは湿った。沈氏は大合唱がおわるまで壇上で身をふるわせて立ちつくしていた。

そのあと、沈氏はホテルに帰った。フロントに日本の代表部からの伝言が置かれていた。すぐ電話すると、官房長官が会うはずだから大統領官邸までゆけ、という。そのようにした。官邸の門をくぐると、庭に朝鮮雉が放ち飼いにされていた。そのあと多少のいきさつがあって、朴大統領自身が会うという。日本人として単独会見をゆるされることは稀有であろう。官房長官に案内されて長い廊下を歩いた。接見の場所は大統領の書斎であった。こういう私的な部屋が使われるというのも、おそらく例外であったであろう。

あとで、

――よか兄貴がごとあった。

と沈氏が思い思いしたほど朴氏は大統領の資格ではなく、個人の気安さでこの旅人を応接してくれた。途中、大統領は席を立ち、やがて数枚の地図をもってきて卓上にひろげた。沈氏がのぞきこむと、なんと南原城の地図であった。

「君の先祖が捕まったのはここだな」

大統領は沈氏にこの話をして馳走してやりたいとおもったのであろう。ちょうど陸軍大学での戦術講義のような正確さで両軍の兵力、配置を説明し、日時を明確にし、やがてすさまじかった南原城の攻防戦について語ってくれた。

そのあと、晩餐の馳走になった。官邸を辞去するとき、朴大統領は、

――君はどぶろくが好きか。

 ときいた。どぶろくは好きでごわす、どぶろくのほうもわしを好いちょります、と薩摩風の地口で答えると、朴氏は、あれは飲みつけぬ者があまりたくさん飲むと腹をこわす、注意したほうがいい、といってくれた。兄貴を持ったことがないが。兄貴がごたる、と沈氏がおもったのは辞去して自動車が動きだしたときであった。ただ、晩餐のときしたたかに酔い、歌をうたいたくなり、われながら調子外れの歌を大声でうたってしまったのは、官邸の静謐を害したかもしれぬと思い、すこし後悔した。歌は、軍歌「麦と兵隊」であった。

Leave a comment

Your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