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きるヒント』五木寛之 (『사는 힌트』이쓰키 히로시) ー抜粋 

 

加藤雅子(가토 마사코) 역

난 음악이라면 장르를 불문하고 거의 다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인간의 육성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가라오케가 유행하고 있어 어디에서나 아마추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을 기회가 간혹 있는데 잘하는 사람의 녹음보다 서툴러도 육성으로 부르는 노래를 듣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혼자서 몇 곡이나 부르면서 마이크를 놓지 않는 사람이 빈축을 살 때가 가끔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이 부르는 걸 옆에서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을 만큼 육성이 좋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것도, 오케스트라와는 달리 오페라 가수들이 자신들의 온몸으로 부르는 그 장면에서 뭔가 감동을 받기 때문이다.

인간은 최초에 말이라는 것을 가졌다고 한다. 최초에 말이 있었다는 성서 속의 구절은 거기서 생겨난 것이라 생각되며, 또 그것이 사실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문화도 행동도 말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고, 사고나 철학, 또는 경제활동도 말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 만큼 말이라는 것은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다. 일본에도 코토다마라는 말이 있어, 말이란 그저 의사전달의 수단이 아니라 종교적인 혹은 영적 세계에 속해 있는 것과도 같은 어떤 큰 힘을 갖는 것으로 존중돼 왔다. 그런데 이번 녹음 때 어떤 게스트가 한 말을 나는 매우 흥미롭게 들었다.

그것은 말보다 먼저 노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고대의 인간이 최초에 발한 말 같은 거. 그 말보다도 먼저 인간은, 감동하거나 슬퍼하거나 할 때마다 노래라는 모양을 갖추지 않았을지는 모르나 어떤 음계를 갖고 있는 소리를 발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이야기이다.

최초에 말이 있었다가 아니라 최초에 노래가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너무 신선하게 느껴졌다. 과연 그랬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작은 새가 소리를 내는 것을 우리는 작은 새가 노래한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혹은 바람이 분다 할 때, 바람소리가 노래처럼 들린다고도 하고, 숲이 산들거리는 소리를 합창하고 있다고 비유한 러시아의 시인도 있었다. 엣세닌이라는 시인은 자작나무의 속삭임을 자작나무의 노랫소리라 하여 산들거리는 숲의 모습을 표현했다.

이와 같이 삼라만상 모든 것이 다 노래에서 시작한 것이라 생각하면 지금 20세기의 이런 기계문명이 한창인 속에서도 우리가 노래에 애착을 느끼며 그를 듣는 기쁨을 느끼고, 한걸음 나아가 자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에 기인하는 극히 자연스런 일이라 하겠다. 가라오케가 이렇게 유행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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